P.12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일 년, 길게는 칠 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 — 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 — 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다음의 질문들이
사슬처럼, 또는 도미노처럼 포개어지고 이어지며 새로운 소설을 시작하게 된다.
세번째 장편소설인 [채식주의자]를 쓰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나는 그렇게 몇
개의 고통스러운 질문들 안에서 머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P.15 이 소설을쓰며 나는 묻고 싶었다. 인간의 가장 연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것
— 그 부인할 수 없는 온기를 어루만지는 것 — 그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덧없고 폭력적인 세계 가운데에서?
P.24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몇 권의 공책들에 나는 이런 메모를 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
죽는다는 건 차가워지는 것. 얼굴에 쌓인 눈이 녹지 않는 것.
P.25 친구인 경하와 인선이 촛불을 넘겼다가 다시 건네받듯 함께 끌고 가는
소설이지만, 그들과 연결되어 있는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가장 어두운 밤에도
여덟 살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주산 학원의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기세여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도로 맞은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처마 아래에서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중
P.45 하지만 너무 춥지 않나. 나는 더 이상 얼고 싶지 않다.
P.47 그러나 살아 있으므로 아름다운 것들.
유령.
종려나무.
결정들.
대사 :
P.54 쓴다…… 쓴다.
울면서 쓴다.
P.95 햇빛이 잎사귀들을 통과할 때 생겨나는 투명한 연둣빛이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특유의 감각이 있다. 식물과 공생해온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리라 짐작되는, 거의 근원적이라고 느껴지는 기쁨의 감각이다. 그
기쁨에 홀려 십오 분마다 쓰기를 중지하고 마당으로 나와 거울들의 위치를
바꾼다. 더 이상 포집할 빛이 없어질 때까지 그 일을 반복한다.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
[2022]
2021
3월 29일
감동적일 만큼 아름답게 자라고 있는 어린 단풍나무 … 죽지 않는 다면.
살아남는다면. 마침내 울창해진다.
4월 1일
3시가 되어 더 이상 내가 햇빛을 줄 수 없게 되면 그늘진 정원을 조용히 바라만
본다. (거울) 햇빛이 드는 정원은……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무지근 할 때도
있다.
씨를 뿌린 야생화는 더 많이 자랐다. 놀라운 것은 일 년 전에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한 관중고사리가 살아서 양칫잎이 올라온 것이다.
4월 2일
벽에서 정확한 사각의 모양을 만들지 못해 마치 후광 — 나무들의 혼 같다.
4월 4일
낮에는 햇빛을 먹고 밤에는 자라나 보다, 식물들은. (사람 아이들처럼)
4월 23일
관중고사리 작은 잎이 또 나온다. ‘뿌리를 뽑아야 해’ 라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뿌리에는 힘이 있다.
6월 12일
참새 두 마리가 지붕에 있다가 마당으로 들어와 단풍나무에 앉아 있다 갔다.
블루베리 화분 옆으로도 몇 발짝 걸어 다녔다. 들어올 만한 곳이라고 새들이
생각했다니 어쩐지 으쓱해졌다.
6월 23일
그런데 아침에 마당에 나가니, 여러 마리 있던 거미들이 다 사라졌다. 날파리도
쥐며느리도 개미도 사라졌다. 서늘하고 무서운 마음. 쓸쓸한 마음.
8월 22일
(잎이 한 번에 다 떨어지면 나무는 죽는다고 한다)
2022
12월 2일
세상에 이 거울은 다 뭐냐?
마루로 들어오셔서는 마당을 내다보며 말씀하셨다.
꼭 너 태어났던 집 닮았다.
집 크기가요?
크기도 그렇고 마당도 그렇고, 꼭 그 느낌이다.
내 첫 기억은 네 살 무렵부터 살았던 집에서 시작된다. 그 전에 삼 년 동안
살았던 최초의 집은 기억에도, 어떤 사진에도 남아 있지 않다. 내가 이 집에
처음 들어선 순간 사랑에 빠진 이유,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필설로 설명할 수
없는 온화함으로 경험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걸까?
외풍이 차다며 엄마는 내가 차도 못 끓이게 했다. (창호를 바꿔야지 이렇게
바람이 들어오는 집에서 어떻게 사냐.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꼭 아파트를 사라.
저 지저분한 거울은 다 버려랴. 낙엽도 깨끗이 쓸고.) 같이 담요를 덮고 모로
마주 누워 손을 잡고, 시상식에 갈 시간이 올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3
5월 1일
대문을 들어서면 라일락 향이 그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