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세 개가 떨어지다 - 김채원
P.13 살아 있는 경우라면 누구라도
변덕을 부릴 수 있고 그래도 된다.
작가노트 - 비밀을 알려줄게
P.29 그와 나는 서로 비슷하다고 할 만한 부분이 별로 없지만 살고 죽는 것들
안에서 내키는 대로 만들어볼 수 있는 게 내 소설에서의 비밀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내 시체를 두고 세 사람이 웅성거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비밀을 만들고 나니 그 비밀이 중요해 보이고 정말로 죽기라도 한
것처럼 평소와는 다르게 나라는 존재가 희미해졌다. 희미해진 채로 조용히
인물들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어 좋았다. 그들의 대화에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꿈도 몇 개 꾸었다. 가령 텅 빈 기차역에서 혼자
공 모양의 전등을 던지는 꿈이나 아침이 오고야 말았네, 라는 말에 겁을 먹고
귀를 기울이는 꿈 그리고 물속에서 숨을 참는 꿈 같은 것들. 한 여자가 다가와
내 배 위에 까만 펜으로 낙서하는꿈을 꾸었을 때는 악몽을 꾸었다는 느낌에
하루종일 조심해야겠다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억은 얼마간 상상이기도
해서 이 꿈들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언젠가 내가 꾸었어야 했는데
꾸지 못한 꿈일 수 도 있고.
해설 - 안세진 - 별과 모과의 윤리
P.32 어쩌면 할아버지는 그때 이미 죽어버린 채 남은 인생을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산 자의 헐떡임과 죽은 자의 고요함이 공존하는, 삶과 죽음의 가능성이
이리저리 뒤섞여 있는, “반쯤은 비스듬히 빛 아래에 그리고 반쯤은 그들에 속해
있”(31쪽)는, 기이하고 또 경이로운 할아버지의 세계 속으로 두 손녀는
발걸음을 옮긴다. 이와 같은 이행이 오직 침묵과 믿음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것도 묻지 말 것. 그것이 여정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첫번째 윤리이다.
추도 - 길란
P.54 “저놈 저거 아직 빨갱이 물 안 빠졌어.”
⠀백부가 웃으며 말했다. 빨갱이 물을 어떻게 뺄 수 있는 건데요? 세탁기에 넣고
돌리면 되나요? 백부는 샤인머스캣을 한 움큼 집어 입안에 넣었다. 나도 백부를
따라 샤인머스캣을 입에 넣었다. 여전히 끔찍하게 향긋하고 달콤했다. 과연,
이런 걸 매일 먹으니까 사람이 죽는 일 정도는 신경도 안 쓰이는 거구나
싶었다.
작가노트 - 우리의 죄를 사하지 마시옵고
P.59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이 의미와 아름다움을 좇게 된다.
천성이 그러한 것 같다. 내가 좇는 아름다움이 뭔가를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도 모르는 채로 세상을 나쁘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언제나 두렵다.
P.60 그 밖에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죄까지도 모두 벌하여주소서.
해설 - 전청림 - 진보의 명복을 빕니다
P.64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어디끼자 비정해질 수 있는가. 소설 속
백부의 집은 그 자체로 타인의 고통을 지도 밖으로 밀어낸 특권의 요새다.
P.66 지금껏 진보의 명복을 실컷 빌어봤으니 이 소설이 재정의하는 진짜 진보적
정치성을 질문해보자. 그건 바로 이 ‘멈춤’에 질문을 전지는데서 시작한다.
P.69 우리는 앞서 진보의 죽음이라는 테마를 검토했다. 한때 세상을 바꾸려
했던 해주의 저항성이 자본의 문법 아래 어떻게 마모되었는지를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죽음마저도 착각에 불과할 뿐, 그것이 백모에 의해 ‘허가된’ 것이라면
어떻게 할 텐가. 진보가 단순히 실패한 것이 아니라 심지어 관리되고,
기획되고, 승인되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말이다. 말하자면 해주는 단 한 번도,
심지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 때조차 정치적이었던 적이 없다. 그녀가 믿었던
‘정치적 저항’은 신자유주의의 교묘한 장치 안에 배치된 하나의 기획이었기
때문디ㅏ. 그 장치는 정치적 몸짓과 의견을 포착하고 통제하며, 결국은 그런
저항마저도 시스템의 활력으로 흡수해 버린다.
… 실상 그녀는 정치적인 것이 상품적인 것으로 번역되는 장치 속
부속품에 불과했다.
P.73 제대로 된 진보적 기획은 우리가 ‘세계의 끝’이라 부르는 그 절망의
장소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모든 것이 금으로 만들어진 허구임을 알게 된 자는,
이제 더이상 그 금빛 매끄러움에 속지 않을 권리를 얻기 때문이다.
작가노트 - 위수정 - 서성이는 사람
P.178 작가는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서성이는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위치인 동시에 시대가 부여한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경계의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작가노트 - 이미상 - L과 C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P.203 게다가 그의 활동 범위는 손님이 비켜’주는’ 공간 너비에 달려 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펄펄 끓는 냄비에 부딪힐 뻔한 사람은 없을까. 그러면
일하는 사람은 있는 힘껏 냄비를 위로 치켜들 것이다. 그런 누적이 우리의 몸과
영혼을 파괴한다. 식당 홀을 알뜰하게 쓰려고 테이블을 붙이는 바람에 꺾이고
마모되는 뼈와 관절을 생각하면 ‘등골을 빼먹는다’는 표현이 비유가 아님을
알게 된다.
⠀등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손을 따라 일하지 않던 때로 돌아가는 몸. 노동은
어쩌자고 이렇게 고통일까.